
"팀장님, 그거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20년 만에 처음 받아본 질문이었다.
완장을 채워준 조직도, 완장을 물려받은 세대도 결국 같은 것을 원한다 — 존중받는 것.
"팀장님, 그 순찰 방식,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순찰 근무표를 새로 짜서 나눠준 다음 날이었다. 막내 순경이 손을 번쩍 들고 그렇게 물었다.
교통과, 형사과, 지구대를 오가며 순찰 계획만 수십 번을 짰다. 2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순찰을 돌아왔다. 그 방식에 의문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후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반항이 아니라, 진짜로 궁금하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생각해보니 나조차 왜 이 순서로 도는지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다른 팀원들의 시선이 슬쩍 나에게로 쏠렸다. 다들 궁금했지만 아무도 먼저 묻지 못했던 질문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차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신임 순경 하나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났다.
“오늘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회식은 곧 근무의 연장이라 여겨지던 시절, 먼저 자리를 뜨는 건 계급 사회에서 거의 반란급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남은 우리는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누군가 "저래도 되나"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도 예전엔 저러고 싶었잖아"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한마디에 어색한 침묵이 풀렸다.
왜냐고 묻는 후배들이 늘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명령에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계급 사회의 문법과는 정반대였으니까.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을 겪은 세대에게, "왜요?"라는 질문은 종종 도전처럼 들렸다. 순간 "선배가 하라면 하는 거지"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 뻔히 보였다. 결국 숨을 한 번 고르고, 순찰 경로가 왜 그렇게 짜여 있는지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그 질문은 반항이 아니라 확인이었다는 걸.
납득이 되면 후배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설명 없이 움직이던 예전 방식보다, 이유를 알고 움직이는 지금 방식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순찰을 만들어냈다.
회식 자리를 먼저 뜨던 그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서운했지만, 다음 날 그 후배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있었다.
사적인 시간을 지키는 것과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후배에게 이 둘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 회식이 꼭 새벽까지 이어져야 좋은 팀워크인 건 아니라는 걸. 그날 이후 우리 팀 회식은 자연스럽게 1차에서 끝나는 일이 많아졌고, 다음 날 지각하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억지로 자리를 지키던 그 많은 시간들, 사실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계급장 대신 설명을 준비하다
지휘관이 된 뒤로는 지시를 내리기 전에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해라" 앞에 "이런 이유로"를 먼저 붙이는 것이다.
순찰 경로 하나를 바꿀 때도, 보고서 형식을 하나 고칠 때도 이유를 짧게라도 설명했다. 처음엔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유를 이해한 후배들은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의 시간에 질문이 나오면 예전처럼 "일단 해봐"로 넘기지 않고 끝까지 답하려 애썼다.
대답할 말이 궁색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솔직하게 "나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인정했다. 그 편이 어설픈 권위보다 훨씬 신뢰를 얻는다는 걸 알게 됐다.
계급으로 누르면 표면적인 복종만 얻는다. 대화로 설득하면 진짜 협력을 얻는다. 나는 그 막내 순경의 질문 하나로 이걸 배운 셈이다.
계급은 역할이지 서열이 아니다
이 모든 경험이 가리키는 지점은 하나다.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존중받고 싶은 마음, 납득하고 싶은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라는 것.
계급이나 연공서열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역할 구분일 뿐이다. 인격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말로 후배를 재단하는 순간, 정작 지켜야 할 신뢰는 더 빨리 무너진다. 세대 차이를 기강 해이로만 읽으면 조직은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놓친다.
반대로 그 차이를 조직문화를 점검할 신호로 받아들이면, 세대교체는 위기가 아니라 혁신의 계기가 된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킨 것도 상급자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후배들이 던진 그 작은 질문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자존심도 상했다. 계급장을 달았는데 왜 매번 설명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그 설명이 쌓여서 신뢰가 됐다.
물론 조직에는 지켜야 할 위계와 규율이 있다. 지시와 보고 체계 없이는 어떤 현장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만 그 위계가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동할 때, 세대를 넘어선 협력이 가능해진다. 지시를 내리기 전 이유를 한두 문장 덧붙이는 것. 후배의 질문을 반항이 아니라 확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회식 자리에서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
거창할 것 없다. 이 작은 습관들이 계급장을 뗀 채 서로를 인간으로 마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나는 현장에서 오래 걸려 배웠다.
가끔 후배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나도 한때는 너희처럼 선배한테 왜냐고 묻고 싶었어." 그럼 다들 웃는다. 세대는 달라도, 그 마음만큼은 똑같이 이어져 온 셈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시가 내 안에 꽃을 피웠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