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유학수기_K03] 중국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국경절 연휴가 시작됐다. 10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긴 연휴였다. 중국에서 처음 맞는 황금연휴라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평소보다 시간이 많으니 우한대학교 캠퍼스를 천천히 둘러보고 영상도 찍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연휴 내내 비가 자주 내렸기 때문이다. 우산을 들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하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결국 영상 촬영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비 오는 날 방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의외로 기분이 좋다. 낯선 중국 생활 속에서 내 방이 아늑한 나만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진다.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 평온함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하고 무료해져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비가 계속 내리니 밖에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우한대학교는 국경절이 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 시기에는 외부인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지 가족 단위 방문객과 관광객이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유명한 건물과 호수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가족과 산책하며 긴 연휴를 즐긴다. 캠퍼스가 하나의 관광지처럼 느껴질 정도다.
나는 따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처음에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휴를 맞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데 나는 학교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운동을 하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매일 달리기를 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도 느껴져 기분도 좋아졌다.
물론 내가 달리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체육수업 점수를 받으려면 ‘步道乐跑’라는 앱을 이용해 달리기 기록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학기 동안 총 45회, 90km를 달려야 한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거나 심심해서 자주 달리는 나 같은 학생에게는 아주 어려운 숙제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쉬운 과제는 아닐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안에 있는 운동장에서 달린 기록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학교 밖에 거주하는 학생은 달리기 위해 일부러 학교까지 와야 한다. 비가 많이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동할 수 있는 날도 줄어든다. 달리기 자체보다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일이 더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번 국경절 연휴에는 우한 곳곳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어딜 가든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날씨도 따라주지 않았다. 중국의 황금연휴가 왜 ‘사람 구경하는 연휴’라는 말을 듣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연휴가 끝나면 여러 수업의 발표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중 하나는 조별 발표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릴 때 치과에 가기 전처럼 괜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내용을 알고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4~5명이 한 조가 되어 학생식당에서 다른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결과를 정리해 발표하는 과제였다.
질문도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나라 또는 어느 지역 사람인가요?”, “아침을 먹는 습관이 있나요?”, “아침을 먹는다면 주로 무엇을 먹나요?” 같은 생활습관을 묻는 내용이었다.
우한대학교에 온 뒤 처음 하는 조별과제라는 점에서 오히려 흥미로웠다.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생활방식을 직접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비가 문제였다. 조원 몇 명은 학교 밖에 살고 있었고 서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결국 전원이 함께 인터뷰를 하러 가는 대신 각자 1~2명씩 인터뷰한 뒤 결과를 합치기로 했다.
아직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어떤 답이 모일지 기대된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결과를 비교한다는 점에서 중국어 공부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도 든다.
국경절 기간에 친구들과 작은 불꽃행사도 보러 갔다.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해 무려 두 시간이나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내렸고 기온까지 낮았다. 기다리는 동안 너무 추워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막상 시작된 불꽃놀이도 기대했던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비와 추위에 떨며 기다렸던 시간, 친구들과 함께 불꽃을 바라봤던 순간, 행사가 끝난 뒤 지친 몸으로 돌아오던 기억까지 모두 합쳐져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됐다.
즐거운 경험만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힘들고 피곤했던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다.
물론 누군가 내게 “다시 그 불꽃놀이를 보러 갈래?”라고 묻는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안 갈 방법부터 생각할 것 같다.
내 첫 중국 국경절 연휴는 화려한 여행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비 오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운동장을 달리고, 과제를 준비하고, 친구들과 추위 속에서 불꽃을 봤다.
처음에는 ‘할 것이 없는 연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중국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하루가 조금씩 내 일상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유학생활은 유명 관광지를 얼마나 많이 가봤는지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비 오는 날 방에 누워 빗소리를 듣는 순간이나 운동장을 몇 바퀴 더 달린 일,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나는 우한대학교에서 첫 국경절을 보냈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나의 유학생활’ 같은 일주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