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함의 밤을 지나 공의의 아침을 기다리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은 가장 먼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시편 7장은 사람 앞에서 변론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시는 베냐민 사람 구스의 일로 인해 억울한 비난과 핍박을 받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이나 정치적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기다렸다. 시편 7장 1~17절은 억울함을 견디는 성도의 자세와 하나님의 정의가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다.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라는 고백으로 시를 시작했다. 사자가 먹이를 찢듯 원수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선택임을 보여 준다. 신앙은 문제가 사라진 뒤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시작되는 순간 하나님께 달려가는 삶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 역시 억울한 오해와 비난, 관계의 상처 앞에서 세상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피해야 한다.
다윗은 만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도 된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이는 자신의 완전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겠다는 믿음의 태도였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기 쉽지만, 다윗은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정의를 담대히 기다릴 수 있다. 신앙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로운 재판장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날마다 악인을 살피시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칼을 가시고 활을 당기신다고 표현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을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오래 참으심이다. 그러나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악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정의는 늦어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편의 마지막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악인은 함정을 파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구덩이에 스스로 빠진다. 악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의 결과를 결국 악인 자신에게 되돌리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과응보를 넘어 공의의 질서를 회복하는 역사이다. 그래서 성도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시편 7장은 억울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의 기도이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더 신뢰했다. 사람의 판단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오해와 비난, 불의한 현실을 만날 수 있다. 그때 성도가 붙들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보호하시고 악을 끝내 심판하시는 공의의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급한 복수 대신 인내를 선택하고, 원망 대신 기도를 선택하며, 불안 대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시편 7장의 마지막처럼 우리의 삶도 결국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